저자의 어머니는 평생 흡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신을 했을 당시, 공익 광고를 보고 큰 충격을 받고,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전의 금연과는 굉장히 다른 것은 정체성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금연 노력을 기울이는 흡연자' 에서 '비흡연자' 로 정체성의 대변혁을 이루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담배를 피지 않기 때문에 비흡연자라는 정체성이 확고하다. 나는 담배를 피고 싶은 유혹도 당연 없으며, 굳이 담배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작가는 진짜 변화는 Identity 와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나는 종교에서도 이것을 굉장히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집안이 종교를 가지고 있었고, 나 역시 그것을 수용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잘 수용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이 힘들지 않은 이유 또한 내 정체성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전도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는데, 비기독교인에게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은 그 동안 쌓아왔던 정체성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깊은 관계를 갖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는 진로에서 나의 정체성을 정하는 것 때문에 혼란이 왔다. 나는 요즘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요즘 사춘기 온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감정평가사 공부를 1년 정도 하다가 그만 둔 이유는 결정적으로 나의 정체성 문제가 있었다. 내가 감정평가사로 살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한 번도 Yes 라는 답이 나온 적이 없었다. 감정평가사 왜 해? 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돈 잘 벌려고!" 라고 대답하면, "돈 잘 벌려면 회계사나 변호사를 하지 왜 감정평가사를 해?" 와 같은 대화들이 반복되었다. 사실 그 때부터 내 방향에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체성 변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저자의 말을 옮겨보도록 하겠다.
첫째, 당신이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스스로를 그렇다고 여겨라. 열받고 화나는 그 때의 감정이 정체성의 변화를 추구한다. 사실, 미디어를 보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본인들의 현실에 대해서 화가 많이 나 있다. "월요병" "워라밸" 등 직장인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말들을 생각해보면 대부분 죽어있는 말들이고, 분노가 가득 차있지만 이러한 분노의 불꽃은 마치 돌덩이를 라이터로 뜨겁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들이 태우는 대상은 지푸라기나 마른 나무처럼 불쏘시개가 아니라, 불이 붙지 않는 단단한 돌에 약한 불들만을 던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아닌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적당히 살만하기 떄문에, 계속 그렇게 작은 불로 큰 돌을 뜨겁게 하려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둘쨰, 당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비준하라. 이것을 위해 꾸준한 행동이 필요한데, 행동의 크고 작음은 상관없다. 이건 나의 음주 행위에 있어서 굉장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어느샌가, 내 정체성은 애주가가 되었다. 실제로도 맥주나 양주를 너무 좋아하고,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진솔한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를 할 때는 굉장히 다른 이야기인데,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누군가 나에게 맥주 한 잔 하자라고 했을 때, 그 거절이 굉장히 어려운 경험을 많이 했다. 작은 거절이 내 정체성을 변화시킨다는 것에 큰 공감이 되는 대목이다.
내가 티스토리를 하는 행위도 조금은 재정의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루에 최소 1포스팅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작가' 라는 정체성은 탐나지 않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 이라는 정체성은 굉장히 획득하고 싶다. 1일 1포스팅의 작은 행위이지만, 이러한 행위가 피드백이 왔을 때, 좋은 습관이 자리 잡을 것이라 믿는다.